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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⑲바울과 베드로복음서 차이와 신약성경 내의 복음

김병윤 | 기사입력 2022/03/22 [08:28]
“복음을 전하려던 예수의 시도는, 바울이 구약성경과 엮는 바람에 무산”

無宗敎人 김병윤의 ‘하나님과의 대화⑲바울과 베드로복음서 차이와 신약성경 내의 복음

“복음을 전하려던 예수의 시도는, 바울이 구약성경과 엮는 바람에 무산”

김병윤 | 입력 : 2022/03/22 [08:28]

바울이 고린도전서 1:10에서 너희 가운데 파벌을 없애고 마음과 뜻으로 하나되라라는 지침을 내린 것을 보면, 당시에 여러 종파가 난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크게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로 나뉘어 있었고, 초기 기독교는 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파와 바울의 사상을 따르는 종파 외에도 유대교의 율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무리와 안 된다 하는 무리가 있는 식으로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종파들로 나뉘어 서로의 정통성을 따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세 개의 철학 집단이 존재했다. 첫 번째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는 바리새인, 두 번째는 사두개인이 있었고, 엣세네인이라고 불린 세 번째 종파에 속한 사람들은 거룩함을 위해 금욕적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유대인 태생이었으며 다른 어떤 종파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결속되어 있었다.” 1)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사도행전 23:8)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말고도 수많은 복음이 언급됩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사후세계에 가서 하늘에 거주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천당복음(Gospel of Kingdom of Heaven)을 사용하는 반면, 마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Gospel of Jesus Christ)을 기본 복음으로 활용하면서 지상의 천국을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Gospel of Kingdom of God)을 기반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특히 유대적인 방향으로 확대한 반면, 누가는 예수의 메시지에 매료되기 시작한 유대인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처럼 보다 범세계적인(cosmopolitan) 청중들을 대상으로 마가복음을 다시 썼다.”2)

 

바울은 처음에는 그리스도 복음을 활용하다가 이후 본인이 제창한(스스로 만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Gospel of Lord Jesus Christ)’, ‘하나님의 복음(Gosels of God)’을 기본으로 사용하고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창안한 다양한 복음을 활용합니다. 야고보나 베드로는 도() 복음서(Gospel of Way)가 있었다면 이것을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에게 여호와와 같은 역할을 부여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주 예수(Lord Jesus)’라는 용어는 누가복음 24:3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습니다. ‘주 예수라는 표현이 복음서 중에는 유일하게 예수의 부활을 다루는 부분에 나옵니다. 누가복음의 예수 부활 부분에 유일하게 이 용어가 사용된 것은 이 부분이 나중에 추가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에는 주 예수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구약성경의 여호와와 같이 바울이나 베드로[사도행전 10:9-23(베드로의 환상), 11:7-10에 반복]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말씀을 전하는 존재로 변질 3)시키기까지 합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그리스도 복음을 활용하여 초기 기독교와 공존할 수 있었는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새로운 교리를 도입하였고, 이로 인해 심지어 야고보나 베드로와도 반목을 갖게 되고 신랄한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현재의 기독교 관련 종교는 예수교가 아니라 바울교라 칭할 수 있습니다. , 학식, 인맥과 상상력이 풍부한 바울이 예수를 뛰어넘는 포교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이 만들었거나 따르던 교리가 광범위하게 채택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의 모순:

 

마가복음 2:26에는 다윗이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전설병을 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구약성경의 말(사무엘상 21)을 보면, 다윗이 이 일을 행한 때의 대제사장은 아비아달이 아니라 사실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인 아히멜렉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단락은 성서가 문자적으로 무오(無誤; 오류가 없음)하지 않으며, 실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들 가운데 하나이다.” 4)

 

현명하게도 마가복음에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삽입하는 작업을 수행한 사람은 믿지 아니하니라’(16:11, 16:13 16:14)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 이 부분이 추후에 조작되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쓴 것이 아님을 알리려고 시도한 것 같습니다. 이 추가 작업을 한 사람은 이 작업이 누가복음이 쓰여진 이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은연중에 밝힙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16:9에 예수가 일곱 귀신을 쫓아내 준 막달라 마리아를 언급하는 것을 통해 완성시킵니다. 이런 내용은 누가복음 8:2에만 나옵니다.

 

그리고 이 저자가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라는 엉뚱한 문장을 집어넣으면서, 자신의 행위가 올바른 것이 아니고 강요에 의한 것임을 은연중에 독자들이 알아채도록 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의 표현 중 가장 압권은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 오른]편에 앉으시니라’(마가복음 16:19)입니다. 누군가가 천당에 올라가서 확인한 후 내려와서 알려줘야 진실한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편집한 저자는 매우 깊은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를 느꼈을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 중 후에 추가된 부분은 마가복음의 부활 관련한 부분 말고도 요한복음 8:1-11에 나오는, 간음 중에 잡혀 끌려 나온 여자를 보고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치라는 말을 하자 모두 물러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추가하여 끼워 넣고 이야기 속의 여인을 마리아로 몰아붙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을 막달라 마리아로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의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마리아가 간음을 하다가 붙들린 여인이었건, 일부 성직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녀가 창녀 출신이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예수가 세리나 바리새인과 허물없이 어울리고 사마리아인을 포용하고 마리아에게 종파 운영권을 전수한 것은 그의 대단한 종교혁명가적 자질을 보여주는 거예요.

  

종교는 사랑의 원심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과 달리 신약성경의 예수께서는 세리, 비유대인 및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로마 제국 백인대장에게 다가가고, 이방인들에게도 자신의 가르침을 전했고, 로마 제국 황제에게는 기꺼이 조공을 바치고, 여성인 막달라 마리아에게 교단 운영권을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뛰어넘는 교리를 찾아 복음을 전하려던 예수의 시도는, 바울이 새로운 복음을 담은 교리를 구약성경과 엮고 부활과 사후세계를 강조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어요. 결론적으로 예수가 바울에게 판정패 당한 거예요. 이로 인해 우리 인류는 한편으로는 중세의 암울한 암흑기를 거쳤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과 인류의 발전이 저해되었지요.

 

토마스 페인의 훈계:

 

계시나 계시 종교로 불리는 것이 인류를 괴롭혀온 가장 증오할 만한 사악함, 가장 무시무시한 잔인함, 그리고 어마어마한 비참함의 근원이었다. 종교는 신성함의 특성과는 동떨어진 가장 수치스러운 믿음으로 변질되었고, 인간이 존재한 이래로 인간의 도덕성, 평화와 행복을 가장 많이 파괴시켜 왔다. 가능하다면 천()의 악마가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있다면 이들이 마음껏 휘젓고 다니며 이를 공개적으로 설교하고 다니도록 허용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이나 다른 성경 선지자들과 같은 사기꾼이나 괴물이 입으로는 신의 말을 전하는 척하며 우리에게 다가와 신뢰를 얻도록 내버려둔 것보다 훨씬 좋을 것이다.

 

성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남자, 여자, 아이 가릴 것 없이 한 국가의 모든 사람을 잔인하게 몰살시키는 만행, 그리고 유럽을 피와 잔해로 가득 채우는 피비린내 나는 처형,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고문, 종교전쟁과 같은 것들은 소위 계시종교라 불리는 불경스러운 것과 신이 직접 인간에게 말로 전해 준다는 무시무시한 믿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상황은 구약성경의 거짓말과 신약성경의 거짓말이 각각 한 축을 담당하며 나타나게 되었다. 구약성경은 불평불만, 잔인함과 살인을 가르치고 있고, 신약성경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약혼한 여성을 탐한 것을 믿으라고 하고, 이런 방탕함을 그대로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치고 있다.”5)

참조:

1) 대전쟁사1. 200-1(2.119-120)

2) 만들어진 예수 참 사람 예수. 존 쉘비 스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282

3) 사도행전 9:5-6, 22:8-10, 23:11, 26:14-18

4) 성경 왜곡의 역사, 바트 어만 지음/민경식 옮김, 성림출판, 2006: 34

5) Thomas Paine Collection, Forgotten Books, 2007: 443-444, 내용 편집역주

 

필자 김병윤1957년생으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퍼듀대학교 MBA 과정을 졸업했다. 대우조선과 삼성전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마케팅업무를 담당했으며,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국제화 및 외국어 교육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가천대학교, 신구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분교 및 호원대학교에서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두레스경영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삼성신화 아직 멀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대한민국 판도라 상자를 열다, 정아에게 보내는 서른 장의 편지, ()과 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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